Sunday, October 29, 2006

wend thoughts

알랭 드 보통 의 책 (우리는 사랑일까)을 한권 더 사고 그것을 끝내는 것으로 나의 주말은 시작되었다가, 끝났다.
아니 그 전에 먼저 감기기운이 있는데에 몸이 잔뜩 오그라들어
토요일 아침부터 병원엘 갔다가 정오가 되기도 전 삼일치 약을 지음으로써 토요일이 시작되었다.

요새 내 주위의 친구들의 대부분(이라고 해봤자 그 표본 자체가 작기는 하지만)은
알랭 드 보통에 열광하거나, 적어도 적지 않은 호감을 갖고 있는데
나 역시 이사람의 책들이,
누구는 너무 감상적이라거나 여성스럽다고 뭐라 할지 몰라도, 너무 좋아서
빠른 속도로 그의 책들을 사고, 또 빠른 속도로 읽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는 금요일에 외갓집에 내려왔다가 어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외할머니 할아버지가 연료값을 아낀다고 보일러를 제대로 틀지 않고 주무신다면서
그러다가 추운데 '노인네' 병이라도 걸린다고 외갓집으로 전화를 했다.

전화의 요지는 '노인네'들은 요새같은 환절기에 특히 건강에 더 주의해야 하며
만약 하나라도 잘못되어 '노인네'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다 자식들이 고달프니 꼭 따뜻하게 하고 지내시라는 것이었다.

"엄마는 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전화하면서 '노인네'라고 해?"

내가 최초로 엄마가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이런 호칭을 사용한것을 들었던 유년시절
했던것과 똑같은 질문을 현진이가 하고있었다.

'노인네'라는 건 분명히 '노인' 또는 '늙으신 분들' 같은 말보다
좀 더 불친절하고 좀 더 부정적인 표현인데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아무리 부모님이라고 해도)와 직접 대화하면서
이런 호칭을 아무렇지 않게 써대고 있다니,
아니 이건 엄마가 꼭 외가쪽 할머니 할아버지와 통화할 때 뿐 아니라
시댁쪽, 예를 들면 시어머니와 통화할 때도 같은 대목이라서

나는 이런 호칭이 통용되고, 이해되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이 대화의 문맥이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노인네' 판정을 받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왜 반발하지 않을까. 왜 좀더 정중하게 부르지 않고 있는 상대방에 대해서 기분나빠하지 않을까.

방금 생각이 났지만, 아마도 '노인'이라는 위치 자체가
'노인'이든 '나이 지긋하신 분'이든 아니면 아예 '노인네'든
좀더 정성스럽고 깍듯하게 불리운다고 해서
사회적 위치자체가 격상될 바 없는 계급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전적 실망이라고나 할까.




곧이어 현진이는
요새 새로 나온 몇 개의 핸드폰, 예를 들면 LG에서 나온,
커다란 액정을 달고 있는 초콜릿 폰의 얘기를 하면서
자기가 가진 핸드폰의 액정이 이제는 너무 작아서 답답하다고 투정을 부린다.


"니 인생에서 핸드폰 액정이 갖는 의미의 비율이 얼마나 되냐?"고
내가 심각하게 궁금해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80%"
고민없는 현진이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지 않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핸드폰 액정이 갖는 의미는 1%도 되지 않는다, 나는 확신했다.

그 1%조차, 만약 노안이 되어서 글씨나 숫자의 절대적 크기는 좀더 큰 사이즈로 요구되는데
핸드폰 액정의 사이즈가 상대적으로 작아서
일반적인 11자리의 핸드폰 번호를 구현하려면 절대적인 폰트 사이즈가
만족할만큼 크지 않은, 그런 분들의 케이스이거나



직업상 핸드폰으로 TV같은 걸 꽤 유심히 봐야 하는 사람이
액정 사이즈가 충분히 크지 못해서,
꼭 잡아내야 하는 디테일을 잡아내지 못하는 경우

뭐 이런 때에야 비로소 액정사이즈는 1%정도의 영향력을 인생에 미치고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조금 작거나 큰 핸드폰의 액정 사이즈는
우리 삶에 극히 미미한 영향만을 미칠 뿐이다.

현진이가 말한 80%는
일단 이런 미미한 영향력이 또 다른 해석 과정을 거쳐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을 말한 것이다.

그것은 흡사
살색 스타킹과 검은색 스타킹을 신었을 때의 차이가 1% 조차 안되지만
어느 누군가의 어느 순간에는 90%의 중요성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의 해석과정을 거친 후이다.




적절한 시기를 찾지 못해 주말 내내 두끼씩을 먹었지만
감기라는 핑계로 잘 먹고
잘 먹자마자 약을 꼬박 챙겨먹는 관계로
나의 정신은 혼미한 상태, 일찍 자야지

Sunday, October 22, 2006

untitled




1. untitled

추상화가들은, 아니면 "현대적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작품에는
왜 "무제"가 그리도 많을까
친구의 이끌림에 구경한 바스키아전에서도
대부분 그의 작품은 "무제"

몇가지로 추정해보건데
일단을 제목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귀찮은 것이고 (사실은 내용이 중요하고 제목이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예를들어 우리가 이메일을 제목없이 띡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의 귀찮음)
아니면 제목이 오히려 내용의 해석을 방해할까봐 두려운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제목 짓는 일에 그다지 환호하지 않기 때문이었겠지

그런데 또 이사람들이 그 수많은 "무제"들을 남기면
다른사람들은 ' 이 무제' 와 '저 무제' 또 '그 무제'를 어떻게 구분해야할까

한마디로 "무제"를 짓는 사람들은
귀찮아하고 이기적인 그런 사람들이라는 결론이다



2. 황당한 위안

매일 밤 회사를 나올때
문앞에서 경비회사 용역업체 직원들이 문을 지키고 있다가
퇴근하는 사람들더러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해준다
"안녕히 가십시오" 도 아니고 "수고하셨습니다"라니,
저 사람은 내가 오늘 '무슨' 수고를 '어떻게' 했는지 마치 아는 것처럼
나에게 수고를 했단다

그러나
황당한 것은
그 수고하셨다는 한 마디에
저사람이 내가 오늘 수고한 걸 어떻게 알지, 깜짝 놀라기도 하는 동시
위안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저 한 사람은
오늘 나의 수고를 인정하고
내 하루를 닫아주는구나 이런 위안



오늘은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악장마다 제목을 붙인다는 혁진오빠의 말에 영감을 얻어서
꼭지에 제목을 붙여봤다,

그래봤자 그 중에 하나에는 "무제"라는 제목을 붙인 꼴이 되버렸지만.... Posted by Picasa

too many candles


초가 무척 많다 Posted by Picasa

TO GO coffee


생일날 시간을 내준 친구들 아리,실 Posted by Picasa

Tuesday, October 17, 2006

3 birthday wishes

그래서

1. 핑크색 도우넛



2. 나무사이로에서 커피와의 휴식



3. Macbook Pro (하하하하)

upcoming event


most exciting upcoming event : my birthday on Oct 21 LOL

Sunday, October 01, 2006

random thoughts

1.

오늘 광화문의 현대해상화재 건물 밖에 걸려있는 큰 현수막에서,
고향에 내려갈 때 뭘 가져갈까 고민하지 말라, 당신이 바로 선물이다, 이런 내용이었는데
어째 내가 보기에는 "그러니까 추석때 집에 불내지 않고 꼭 살아계시도록 조심하십시오" 라는
말로 들린다 허허허



2.

유진 파마가 이랬단다, "Life always has a fat tail"
이건 아주 극단적인 (극단적으로 좋거나 극단적으로 나쁜) 일이
왠지 너무 자주 일어난다고 느끼는
나를 비롯한 현대인에 대한 위안이자,
또한 그러한 극단적인 일들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통찰력 있는 한마디가 아닌가!



3.

다음주,
부모님은 개천절 전에 먼저 할머니댁에 내려가시고
나는 수요일 일을 마치고 혼자 KTX (!!! 비록 입석이지만)을 타고 내려가고
상미는 뒤는게 일정을 확인한 결과 수요일날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갈것 같고
현진이는 다음주에 있는 중간고사때문에 서울에 남아있기로 했다,
이렇게 복잡한 추석 시골길은 우리에게 처음이지만,

수요일날 기차 시간을 조금 일찍이라고 작은 거짓말을 한 후
느긋하게 저녁을 먹고 (물론 평소보다 훨씬 일찍!!!)
혼자서 두시간 남짓 처음으로 KTX를 타고 할머니 댁으로 가는 것은
상상만으로 이번주를 가볍게 해준다 호호호

Volver Movie Trai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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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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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elope Cruz stars in the latest Almodovar film about three generations of women and how they deal with death and the rich culture that surrounds it in the region of La Mancha (where Almodovar was b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