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September 03, 2005

i'm not scared

im not scared Posted by Picasa


두렵지 않아.

한참 전에 씨네 큐브에서 이런 제목으로 개봉했던 적이
있었던 영화인것 같다

만들어 진 지는 꽤 된 (알기로는 2년쯤 된) 영화인데
홍콩에서도 뒤늦게서야, 9월 1일날 개봉하게 되었다

특별히 학수고대 했던 영화도,
아는 바가 있는 것도,
감독이나 배우나 영화에 대해서 괜찮은 얘기를
들었던 영화도 아니고

금요일 밤에 방안에 앉아서
내일은 뭘할까를 생각하다가
맘에 드는 것으로 어쩌다 고른 영화가 바로 이
i'm not scared


서울에서 주말 아침 조조영화를 보러 가는 것보다
여기선 훨씬 쉽게 조조를 볼 수 있다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으리으리한 IFC가 있고
IFC안에는 으리으리하게 좋은 극장이 있는데
이 으리으리한 극장에서는 겸손하게,
주말 아침 10시 반 영화를 한국 돈 약 4000원에 보여 주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꼭 영화를 보러 가겠다는 생각으로
주말에는 꺼져있는 핸드폰 알람을 9시에 맞춰놓고 잤는데도
어젯밤의 누적된 피로가 꿈에까지 침투했다

이른 아침의 꿈속에서 난 늦잠을 자서
돈을 더 내고 오후에서야 극장으로 가게 된 것이다

꿈에 놀라서 뒤척거리다 보니 알람이 울리고
그제서야 9시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고 여행사에 전화했다,
영사관 웹사이트를 뒤적뒤적하다가
열시 이십분이 되어서야 겨우 영화를 보기로 맘 먹고
집을 나섰다




영화를 보러 가면서,
홍콩에서 어떠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도
갈 수 있는 walking distance에
멋진 곳들이 많은 것들이
날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는 생각에 아주 흡족해졌다

물론 이런 곳들은 집에서 반경 몇 킬로의 몇 군데에 불과하지만,
아침에 군중 인파를 뚫고 버스를 타지 않아도
멋진 영화관에서 싼 조조를 보여준다

걸어서 십 분 정도 되면 대부분의 콘서트가 열리는
city hall에 당도한다
(10월에 보로딘 4중주단이 오는데 티켓값이 $200,100,80,
그러니깐 젤 비싼게 한 삼만원 좀 못되고 젤 싼 건 만원쯤 하는거다)


아, 행복해라!
서울에서 내가 워낙 촌동네서 살아서 그랬는지
이런것들이 주는 즐거움이란, 오늘 하루 나를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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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 영화는
최근 이어진 영화에 대한 나의 끝모를 불평에
확연히 마침표를 찍어준 매우매우 훌륭한 영화이다



어떤 성장영화들은
단순히 '귀여움'을 상업화하는 데에 그쳐
관객을 화나게 하기도 한다



물론 이 영화를 보면서
배우들의 귀여움, 이탈리아 언어의 아름다움,
또한 말했던, 도시와 문화에 깃든
디테일의 아름다움에 감동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디테일의 아름다움은
이탈리아 영화에 '이탈리아'라는 프리미엄을 후히 얹어 줄 것이라는 것이
부러웠던 것도 사실이고


그러나 이런 것들을 차치하고라도
나의 '성장'과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만들어준 데 대해
이 영화는 정말 성장영화라고 인정해 주고 싶은거다





어딜 갔다 돌아왔느냐면서
어린 아들과 딸을 혼내는 어머니가
뒤이어 가벼웁게 아들의 머리를 내려치는 동작의 유려함가운데
이 어린이의 어린 시절은
다른 어린이들의 어린 시절보다 훨씬 많은 '비밀'을 갖게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이것이 '비밀'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이것들이 영영 누구와도 나누지 못하는
정말'비밀'로 남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왜, 모두들 그런것 하나 있지 않나
내가 지낸 어린 시절 중에서
남들에게 말하면 절대 안될 것 같은
그랬다간 사회에서 소외당해버릴 것 같은,
혹은 이제는 나를 다른 눈으로 바라볼 것 같은,
나의 유년기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그런 비밀




초원에서의 모험을 마치고 늦게서야 귀가한 이 어린아이 Michele

(Michele가 이탈리아에선 '마이클'도 '미셸'도 아닌 '미켈레'로 발음된다는 걸
어젯밤 누군가의 이름을 찾다가 드디어 알아냈는데 오늘 아침에 듣는 반가운 Michele!)

자꾸 이런 식으로 할거면 집이나 나가서 get lost! 하라는 아빠의 말에
순순히 돌아서 한 걸음 한걸음을 떼는 열살 Michele를 보면서

"쟤가 이제 , 정말 안되겠군!" 이라고 생각하면서 조급증을 낼 부모님보다
돌아서 반항할 수 밖에 없는 Michele에 감정이 스스르 이입되었다


Michele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치관에 충격을 받은 것은
'목마르니?'라고 묻고는 이내 물을 구해다 주는
성실한 장면에서였다

나였다면 물론
목마르더라도 좀 참아봐, 하면서 스르르 물러났을텐데
그 이후로 이어지는 Michele의 꾸준한 morality는
결국 Michele에게 아픈 결과를 선사하더라도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면서
우리는 정말 많은 일들을 겪는데
어떤 것들은 주변에 공개되고
어떤 것들은 공개될 수 없어
우리 안에서 삭아지고 만다


영화를 따라가면서
자라면서 다른사람들과 공유되지 못하고
아직도 내 안에서 삭아지지 않은 것들이
무엇인가 찬찬히 생각해보게 된다



약간 비현실 적이긴 하더라도
영화의 결말이 마음에 드는 것은
그렇게 아픔에도 불구하고
Michele와 친구가 활짝 웃으면서
악수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너무너무 아름다운 영화!

2 comments:

Anonymous said...

영화 하나를 보고 이리도 많이 쓸 수 있구나.
나의 영화평은

'재밌고 여배우도 이뻤다.',
'재미는 없지만 주인공이 이뻐서 좋았다.',
'작품성은 뛰어나나 히로인의 캐스팅 미스로 보인다.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영화',
'빈약한 플롯을 노출연기를 통한 대중성 확보로 만회하려 했으나, 연기에 몰입하지 못하고 몸을 사리는 여배우로 인해 그 마저 얻지 못하고 있다.'

....정도 뿐이거늘.

Sunmi said...

ㅋㅋㅋㅋ 너무 웃기다
근데 저도 스파이더맨의 히로인의 미스 캐스팅에 대해서는
대찬성이에요
봐두봐두 안이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