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13, 2004

도서관에 오랜만에 앉아서 슬쩍 슬쩍 벽에 붙은 시계를 볼 때마다 삼십분씩이 지나 있다.
상대적으로 빨리 가는 시간 체계에 슬쩍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시간은 빨리 가버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현대 백화점 길도 다 문을 닫고 유정이가 먹고 싶어했던 소프트 아이스크림 가게도 close를 달아놓다.
불꺼진 긴 상가의 복도를 지나 지하철을 타고 동네에 도착한 시각은 밤 열두시가 거의 다 되어서였다.

아직도 역 주변에 환하게 불을 켜고 과일을 파는 사람들, 반찬 가게도 있고 길거리 포장마차도 있다.
그 중에 바로 한 분은 엄마의 초등학교 동창이다.

아주 옛날에 엄마가 서울 올라왔을 때
어찌 어찌 하다보니 고향 동창이 한 명 있더라는 것이다.
참 신기하지, 초등학교 동창이랑 같은 동네에서 살게 된것인데
그것은 지금까지도여서 그 엄마 친구분, 윤복이 아줌마는 아직도 과일 가게를 지키고 있다.



시간이 지나서 나도 그 역을 변함없이 오르내리는데
어떨 때는 아줌마가, 어떨 때는 아저씨가, 또 아주 아주 가끔은 그 큰 딸들이 가게를 지킨다.
한참동안은 아줌마 눈이 빨개져 있었는데 아줌마가 백내장인가 무슨 눈병때문에 고생을 했다 했다.



그래도 예쁜 아줌마였는데 시집오고 남편을 잘못만나 고생을 한다는
엄마의 말을 들은지는 오래다.


언젠가부턴가 아줌마도 안경을 쓰고 머리도 조금씩 하얘지는데
매일매일 전철역을 오르내리면서 보는 얼굴이지만
그 십 몇년을 종합해보면 아줌마는 자신의 노화를 동네 사람들에게 공개한 셈이다.
어떻게 아줌마가 나이를 들어가는지 나는 여실히 기억한다.




한참동안 집을 비운 후 요새 다시 학교에 다니느라
역을 오르내리는데
난 항상 습관처럼 그 과일가게를 바라본다.
오늘은 아줌마가 있는지 아저씨가 있는지. 그치만 옛날부터 인사는 잘 하지 않게 된다.
가끔씩 그쪽이 너무 바빠보이기도 하고
또 아줌마로서도, 이제 다 큰 친구의 딸에게 변함없이 과일 가게를 지키는 모습으로 인사를 받는 것이
그리 편안한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며칠 집에 늦게들어가 거리도 한산하고 아줌마도 바쁘지 않아보여
몇번 인사를 했는데
그때마다 내 목소리가 작았는지
아줌마가 먼산을 보고 딴 생각을 하는건지
아님 한 일년 못 본사이 날 기억 못하는건지
번번히 내 인사는 아줌마께 전달되지 못해
난 이제 그냥 지나가야겠다하고 마음을 굳히며
집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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