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December 30, 2004

부적격 요리사

Jamie Oliver 내가 좋아하는 요리사 (모 어떤 다른 일로 욕을 먹는다고 해도 그의 요리쇼는 분명히 재미있다)이자, 뭐랄까, 요리에 대한 객관적이고 때로는 서구적인 관점을 알게해준 사람이다. 난 원래 먹는것은 좋아했었고 어느새부턴가 만드는 것에도 조금씩 취미를 붙이기 시작했는데 메뉴는 아주 소수에 국한된다.

낮에 뭘 해먹을까를 고민하다가 현진이가 화이트소스 스파게티를 원했고 상미도 동의했기에
어린 현진이를 시켜 베이컨과 양송이까지 사오게 해서 굵은 스파게티를 오랫동안 삶아 드디어 세 접시를 마련했다.

그런데 나는 다 먹을 동안 요놈 둘은 티비를 본다는 핑계를 대고 먹는 속도를 줄이더니 급기야 상미는 대놓고 피클을 찾기 시작한 후 이상하게 스파게티를 먹기 시작했다. 입을 꼭 다물고 면만 주루룩 흡입해서, 마치 맷돌에서 콩국물이 갈려나오듯 소스는 수동적으로 뱉어내는 것이다. 현진이도 늑장에 늑장을 부리면서 맛있다고는 하나 전혀 속도가 안난다.


내가 상미의 그 먹는 모습을 보고 왜그러느냐고 묻고 우리 셋은 다 웃다가 나자빠졌다. 슬쩍 나몰래 소스를 회피하던 상미는 딱걸렸고, 함께 파스타를 회피하던 현진도 제발 저린 것이다.


이로써 나는 부적격 요리사임이 판명되었다.

나중에 덧붙인 상미는 자기는 역시 한국 사람이라느니,
앞으로는 음식에 우유를 넣지 말라느니 하면서 우유를 넣은 scrambled egg에 대한 혐오를 다시 한번 강하게 드러냈다.


우유라면 나도 정말 싫어했는데 입맛이 변했나보다.

그리고 앞으로는 동생들의 미각을 혹사시키지 않기위해 절대 요리는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Wednesday, December 15, 2004

Thank God!

Thank God, finally got an offer from P&G, Finance and Accounting Division.

Monday, August 02, 2004

sick

today's lesson :: don't overeat even if the food lures you a lot

that makes you sick , like today's me

please go easy on me, world!

last week, i applied for a one-month part time job at Goodmorning-Shin Han bank helping M&A related work. didn't get it because they wanted someone like native speaker cause that job involves translating what PCA company people say and stuff. kinda wanted it 'cause this M&A is huge in Korean economic scene for now but it was a exiciting experience waiting for the call. (even though i didn't get it*sad*)


and i applied for another internship at Shell Pacific and guess what. i got a call from there today and arranged an interview schedule.

wish me a luck *please* and world, please go easy on me!

but although i don't get this job either, i wouldn't be down or frustrated since as Lee Yee told me today, life is an ongoing prodecure. even if i fail in something that i think is important now, these experiences altogether would bring me a considerable amount of something....


Thursday, July 29, 2004

another home

can't believe it's finally working again after all these hassel
i decided to go back to my previous home.
ang, i guess you're the only foreigner who comes and visits here, so
this is soley for you (writing in english , i guess hehe)

okay, let's go international and please post up some wisdom, please do!
woo... now i'm scared to say ' come and visit my blog' since i wouldn't know when it starts to disappear again. so, maybe it's gonna be just my secret web journal; as i wished. -_*

::doesn't mean i mind your coming here and mocking around ::
  


Saturday, July 03, 2004

little wisdom

엄마; 밥 먹어
나 ; 나 배 안고픈데
현진; (푸하하) 언니는 배 고프면 밥 먹고 안 고프면 안먹어? 때 되면 먹는거지

Thursday, July 01, 2004

Nobel Prize Recipient

오늘부터 3일간 FEMES(Far Eastern Econometrics Society)2004 학회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계량 시험은 아주 엉망으로 쳐 놓고 ㅋㅋ
계절학기를 마치고 배고파 기절할 것 같길래 (배고픔에 대한 나의 표현은 언제나 과장적이다)
청경관에서 요기를 한 후 Clive W.J. Granger라는 작년 노벨상 경제학 수상자의 강의를 들으러 갔다. (클릭하면 수상 인터뷰를 볼 수 있음. 지금 사이트에서 보고 안 건데 공동 수상이면 상을 1/2 씩 준다니! 우끼다!!ㅋㅋ) 나이가 많으셔서인지 어느 분 말대로 컴퓨터와 친하지 않으셔서인지 발표는 직접 손으로 쓴 노트를 가지고 프리젠테이션을 하였다. 뭐 조건부기대의 발달에 대한 것이라니 내가 대부분 들어도 모르는 내용이었지만, 이상하게 강의가 그저 대학의 강의를 듣는 듯 했다.

내용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당연히 하나도 알 수 없는 내용이었음) 전체적으로 마치 학생을 대상으로 교수님이 설명을 해주시는 듯 발표가 진행되었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교과서에 실린 몇십 년의 역사를 가진 이론 체계가 대상이 아니라, 막 학문 연구의 frontier에서 거두어진 산물이 그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엔 이해가 느리고 쉽게 지루해 하는 학생과 같이 발표를 견디다 못해 중간에 빠져나오는 교수님들도 종종 있었다는 것. 이제 다시 노벨상 수상자로부터의 직강을 들어볼 날이 오기나 할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하는 마음으로 mp3를 동원하여 녹음도 하였는데 워낙 멀리 있었고 교수님께서 마이크 사용을 별로 개의치 않고 말씀하셔서 무슨 얘긴지 들을 수는 없다.



이어서 조금 있다가는 각각 일본, 터키, 영국, 미국, 한국 등에서 오신 교수님들의 발표 세션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자원봉사자가 동원되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별로 할 일은 없었다. 물론 자원봉사 지원자의 대부분은 자의에 의해 어깨너머로라도 뭔가 들어보려 모인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지만 말이다. 교수님들의 발표도 학생들과 똑같다. 학생들 중에도 잘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 표현력과 전달력이 우수한 사람, 지루한 발표를 유도하는 사람 -_- 등등 각양각색이듯, 교수님, 학자들 중에도 발표하는 능력에는 큰 편차가 존재한다. 물론 듣는 사람들 중에 말안듣는 학생처럼 딴전하는 교수님들도 많고.


피곤하긴 했다 (별것 아닌데도 끝나니 피로가 몰려온다). 그치만 한경관에서 저녁먹고 왠지 뿌듯했다. 한편으로는 언제나 지울수 없는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은 나와 동반했지만 ㅋㅋㅋ

Saturday, June 26, 2004

My Big Fat Greek Wedding

MY
BIG
FAT
GREEK
WEDDING


브라질리안 크리스티나의 favourite은 My Big Fat Greek Wedding이었다. 작년 사월쯤 6박 7일간의 투어에서 만난 바싹 마르고 까만 크리스티나는 처음 호주에 도착하여 영화볼 생각이라곤 하지도 못하던 정신없던 나에게 요새 개봉한 영화에 대한 일말의 감각을 주었다. 제목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My Big Fat Greek Wedding이라니 무엇이 Big 이고 무엇이 Fat인지 궁금해졌다. 신기한건-어젯밤 세자매가 동시에 이 영화를 볼 때에 어린 현진이가 '도대체 뭐가 Fat이라는 거야?'라는 수준 높은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그리스인, 그리고 그리스 인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




툴라의 아버지의 그리스 문화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애정은 억지스럽지만 결국 이 영화의 가장 코믹스럽고 극적인 장면을 이르게 하는 발판이 된다. 그것은, 툴라와 이안의 결혼식을 일컬어 '오렌지'와 '사과'의 결혼이 'In the end, we're all fruit'이라는 피로연의 연설이다. 이 연설은 오랜시간 그리스인인 며느리에 대해 못마땅해 했던 이안의 부모님의 마음까지도 감동시켜 버린다.


영화는 스물 일곱이나 되는 툴라의 사촌처럼, 그 많은 그리스 가정의 수처럼 다채롭고 발랄하다. 툴라처럼 씩씩하고 이안처럼 다정했다. 툴라의 연애가 진행됨과 동시에 툴라와 이안의 자동차안에서의 키스신이 그들의 사랑의 진행을 암시해주는데 현진이는 눈을 뜨고 그걸 쳐다보려는 것이었다. 이거 연소자관람가라면서. 나랑 상미가 안된다고 눈 가리라고 그러니까 ' 저 아저씨 변태같애'라고 해서 깔깔거리고 웃었다. 참나, 나 어릴때랑 참 다르다고 생각했다.


툴라의 아버지의, 세상은 그리스인과 그리스인이 되고싶어하는 사람들로 되어있다는 말이 맞다는 것은 그리스 찬란한 문명과 그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 그런데 그리스인 툴라를 사랑해서 그토록 그리스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이안처럼, 채식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주는 고기를 받아먹고, 엄마의 이름까지 바꿀 정도로 그리스인이고자 하는 이안을 보면 툴라의 아버지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툴라 아버지의 말이 맞을 정도로 그리스인이 위대하다면, 정말로 세상은 그리스인과 그리스인이 되고싶어 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일것이다.



툴라 아버지의 고집스러우며 어찌보면 꽉 막힌 면은 우리아빠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결혼한 딸 부부에게 집 한채를 선물했지만, 결국 그것이 파르테논 신전을 닮은 자기 집의 바로 옆집일 정도로 타협과 고집의 양 날을 세운 툴라의 아버지는 그래서 나에게 사랑스러웠다.

Wednesday, June 23, 2004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나는 세상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단다.
아침에 아직도 잠이 덜깨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상미가 학교 가기 전 잠시 와서
김선일씨가 결국 살해되었다는 말을 전하고 떠났다.
정신없이 내려가서 TV를 보았다. 믿을수 없었다.


우리나라 외교력이 한심할뿐이다. 이것은 외교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것인가?
추가 파병 문제로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느니 했다는 것조차
부수적인 문제로 보이고,
직접 communication조차 하지 않았으며
그저 언론에만 의지했다는 것이 믿을 수 없는 외교력 부재의 반증이 아닌가.


세상이 얼마나 더 악해질 지 모르겠다.

솔직히, 김선일씨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떠오른건
기말고사 문제로 나왔던 time-inconsistency 문제였다.
정부에서는 신뢰성 있는 정책 추진을 위해서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그래서 테러리스트들에게 인질이 잡혔을 때
그 인질을 구하기 위해 테러리스트들과 협상을 하면 안되다는 내용의 답을 뻔히 답안지에 쓰고 나와서

그리고 계속되는 민족주의와 심하게는 국수주의로 치닫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이 걱정된다는 일부 교수님들의 말씀을 듣고
감정에 의존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부는 공신력 있는 정책을 위하여 협상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예 대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비통하고 가슴아프고 분할 뿐...

정말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Monday, June 21, 2004

유교수님

유병삼교수님의 개인 사이트는 나의 즐겨찾기 최상위 그룹중 하나다.
이번학기에 수강하게 된 계량 경제학 교수님이신데
나를 비롯한 친구들의 꿈에 한번씩 나오셨을정도로
우리를 사로잡으셨다.

가끔 심심할 때 게시판에 들어가서 교수님 글을 읽어보면
너무 재미있으시다.
학생들 질문에 해주시는 답도 끊임없이 재미있고
아빠나이쯤 되셨는데 ㅋㅋㅋ 졸업사진 잘 찍으라고 즐사~ 이런 유머 하시는것 보면
귀여우시고
학자로서 존경스럽도록 대단하시면서도
이만큼 학생 친화적으로 탁월한 설명 해주시는 분도 없고
학생들의 학업과 진로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관심을 쏟아주셔
많은 자극이 되었다.

특히 첫 화면에 링크되어있는 '수강생에게'의 마지막 부분

성적은 고쳐주지 않을것이다..
그렇다고 나를 멀리하거나 하지는 말아라...

히히 너무 좋으시다.
아~
그런데 시험을 잘 못봤으니 어쩐담 -_-
a tiny little french-like town in akaroa C'est La Vie! (in NZ, dec, 2004) Posted by Hello

Saturday, June 19, 2004

Summer Break started, eventually

여름방학이다. 지금은 정신이 없고
이 사이트 보아하니 점점좋아지는것 같다.
아주 오랜만에 와보니 이것저것 좋아져서 사진 두개 올려본다. 아함~ 자야지
in Freo with a cute fairy Posted by Hello

Friday, May 28, 2004

Applied for the summer internship for Prudential Life Insurance Company Korea Ltd.

Monday, May 24, 2004

met 윤희 on the street

집에 오다가 윤희를 만났다.
재작년에 스물아홉이었다는 남자친구랑 같이 산책중이었다.
얘도 진짜 오랜만에 만났는데 요새 뭐해? 그랬더니 '입고해야지'이런다.
무슨 뜻인가 생각해보니, 고시 입문이란 소리였다. 선생님이 된다고.

우리의 인생은 4년을 주기로 돌아가는것인가?
마치 4년 전의 사람들이 인생속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 같다.
Toeic 시험장에서

아침에 토익시험보러 갔다가 초등학교 동창인 다애를 만났다.
多愛라는 이름같이 사랑이 많은 친구였는데 오학년때 만나 즐거운 한때를 보냈던 이 친구와의
많은 추억들을 기억한다.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삼학년때는 같은반까지 되었지만
그 때의 심정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쨌든 초등학교때의 친밀함에 비길수 없는 이상한 어색함이 어려있어
우리는 가깝게 지내지 못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누가 날 부르길래 돌아봤더니 대학가고나서 아주아주 오랜만에 만난 다애였다.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우리의 관계는 어쩌다 만난 동창들끼리 그렇듯이
전화번호만 저장하고 한동안 또 잊혀질 수 도 있었는데

시험이 끝나고 같이 밥을 먹으러 가고,
다애의 남자친구와 졸업사진과 그리도 초등학교의 추억과
입사한 친구 수진이의 얘기와 등등까지 진도가 나갔다.


나를 되게 많이 찾았더라고
보고싶어 했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졸업사진때 입을 옷을 사러 갔던 다애는

밤에 문자로
(obvisouly, i can't fit in her clothes, she's way taller than me and slimmer..)
졸업식날짜가 다르니 옷이 필요하면 빌려주겠다고 하고
아니면 화장이라도 해주겠단다.




너무 마음이 따뜻했다.
다애는 떠올리면 그런 친구였다.
옛날부터 자기것까지 희생해가면서 남을 도와주곤 하는 얘를 보면서
정말 착하다,라고 생각했었는데 (very angelic look, too ^^)
오랫동안 잃었던 친구를 다시 찾았네.


그리고 오랫만에 떼르드 글라스도 사주었다. 호두랑 요거트, 키위 맛있었다!

Saturday, May 22, 2004

Posco 지원 - 연세 취업정보실에서 screened out
수출입 은행 하계 인턴 지원

Thursday, May 06, 2004

강박증






새벽 세시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깼다.
어젯 밤 세라 이야기를 읽다가 저녁 일곱시부터 잠든 이후였다.
그리고 일어나서 볼일을 본후에 다시 누워서는
시험끝나고 내가 너무 놀고 있지 않은가를 생각하고
잠을이루기까지 괴로워했다.

연주가 고삼플레이라고했다.
공부한다 말만하고 잘 하지도 않는 것은 고삼플레이가 맞다,
확실하다. ㅋㅋㅋ
Salad Plus Menu







가장 클래식해보이는 인사동의 맥도날드는 어제 현진이와 나의 종착 코스였다.
배스킨 라빈스에는 색소가 많아서 안돼! 라고 했으면서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근처 맥도날드에서 맥플러리를 사주는 것으로 어린이날을 마감했다.





그런데 가보니 Salad Plus Menu가 한국에 상륙한 것이었다.
호주에 있을때 하루에 맥도날드 광고는 수백번을 했던것 같다.






여튼 작년 이맘때던가 비만과 각종 성인병에 의해
시름시름 공격을 당하던 맥도날드가
야심차게 내놓은 Salad Plus Menu는


그 맥도널드가 선한 척 건강한 척 하는 꼴이 비기 싫어서
탐탁지는 않았지만
(Salad Plus Menu시키면 물을 한병에 50센트에 드립니다.. 등등, 웃음이 나오는 그들의 마케팅에 진짜 분노하며..)
웃긴게, 분노는 했으나 만약 내가 맥도널드 간다면
나도 Salad Plus를 시키곤 했다는..





어쨌든 베리나이스 요구르트를 비롯해서
얘네들이 한국에도 출동 했는데

앞사람이 주문한 베리나이스 요구르트 상태를 보니
베리 나이스하진 않고
쫌 오래되 보였다.


베리나이스 요구르트, 이름에 책임을 져라!
Did you have a nice children's day?

seems like children's day just fades away as we grow up, but for me,
it's still childeren's day while others enjoy hanging out with their friends, loved ones, etc.
it started with this Bubble magic show which was 30,000, tremendously expensive!!!!

어젯밤 현진이가 급히 결정해버린 이 버블 매직쇼란 것을 보기 위해
아침부터 아빠는 코엑스로 달려가서 표를 사고 나랑 현진, 헐레벌떡 달려서 공연장으로 갔으나
이 쇼는 철저히 어린이날 아이들을 위한 쇼였다.
사기꾼 같아 보이는 이탈리안 매지션이라는 사람은 말도 안되는 공중부양 마술등을 선보였지만
흑.. 보는 내내 난 너무 가슴이 아팠다.
너무 비싼 표값치고 정말 필요없는 공연이었지만
그래도 애들은 좋아하는것 같다. 특히 현진이, 너무너무 재밌었다고 하니.


참, 이런 것은 한계효용 법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면
어른들의 표값은 애들 표값보다 싸야하는데
왜 어른들 표값이 꼭 만원씩 더 비싸야 하는가

이런 공연을 애들한테 보여주는 부모들이
이걸 보고 좋아하는 애들을 보며 얻는 만족감의 효용이 표값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가?
어쨌든 부모들이 얻는 만족감 자체는 애들의 그것의 십분지 일 정도 밖에 안되는데
턱없이 비싸기만 한 아이들용 공연의 표값은 아이러니이다.


밥을 먹고 서점엘 갔는데
현진이한테 책을 네권 사주었더니 현진이가 너무너무너무너무 기분이 좋다고 했다.
마이 씬인지 하는 바비를 닮은 인형을 보다가
결국 그 손에 책을 안겨준 나는 책을 받고 좋아하는 현진이가 너무너무너무너무 기특했다.

그 중에 네버랜드 클래식이라는 시리즈에서 소공녀를 완역한 '세라 이야기'를 발견했다.
현진이 선물에 포함시켜 사서 내가 읽기 시작했다.
세라이야기라는 제목을 본 순간 두근거리기 시작한 가슴은 도저히 이것을 읽지 않고서는 진정되지 않을것 같기 때문이었다.



옛날에 읽었던 소공녀가 일본판을 번역한 책이었다는것도 몰랐고
그 뒤에 이렇게 길고 디테일한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2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런 이야기를
열장 남짓의 그림책에 어쩜 그리 잘 요약이 되어있었던가 (내가 옛날에 읽은 소공녀판에) 하는 것이었다.
세라며, 베키 (내가 나중에 Rebecca라는 이름을 선호하게 된 가장 막대한 영향력의 소유자, 하인), 그리고
민친선생님과 아버지의 다이아몬드 광산 이야기 옆집 인디안 남자 이야기 등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활활 살아났는데
옛날에 읽었던 소공녀가 이런 것들을 사실 빠짐없이 나에게 알려주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어렸을 때 읽은 책과 동요 등에 집착하는 나는
이게 그 말로만 듣던 피터팬 신드롬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과 함께 더욱 강한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푸하하.. 피터팬 신드롬 따위를 갖고 있는 사람을
말은 안했지만 좀 이상하고 유치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소공녀나 등등에 탐닉하고
읽고 싶은 책에는 성인들이 읽어야할 책들이 아닌 '네버랜드 클래식' 따위나
방정환 동화책 등이 랭크되어 있는 것이
피터팬 신드롬이 아니던가? 그럼 난 뭔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늙는 걸 두려워 한단 말이야?


크하하...




Monday, May 03, 2004

www.cyworld.com/abba1360



나와 닮은듯 하지만 많이 다른
나으 동생
3S that will change me
Scripture (말씀)
Spirituality (영성)
Service (헌신)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12:2-5

Saturday, May 01, 2004

나의 마지막기록으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니
그런데도 일주일의 시간을 전혀 눈치챌 수 없음은 나의 둔감함 때문인지 나에겐 너무 금방이었던 지난 칠일간.


지구 먼 저쪽에서 나에게 힘을 주는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이
좋다, 오늘 아침 말레이시아 친구 LEEYEE에게서 받은 이메일.
그녀는 언제나 나에게 큰 그림을 선사해준다.
내가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 겉으로는 정말 알 수 없지만 서너살 나이를 더 먹은 것이 허투루 먹는 것이 아닌것 처럼.
언제나 잃지 않는 유머감각.
골골대는 차 한대나마 있다고 어디든 태워주겠다던 따뜻한 마음 등
LeeYee를 생각하면 난 그녀의 아름다운 이런 모습들밖에 떠올릴 수가 없다.


아침을 너무 잔뜩 먹어서 힘들다.
빵이 있으면 정말 사족을 못쓴다. 사족을 못쓴다는 말 너무 웃기지만 정말 사실이군.
나의 팔과 다리의 의지가 아닌 어떤 다른 힘이 나의 몸을 지배하는것만 같다 .


Friday, April 23, 2004

실이야 축하해

실이야 축하해~~~~~ ^-^
the reason behind my being 메뚜기 forever

어제 중도 오층에서 아침부터 메뚜기로 활동했다.
정말이지 그날은 아침 일찍이 와서 자리를 단한번이나마 맡아보려고 했었는데
절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새벽 여섯시까지 와서 자리를 맡는다는 그들이 정말로 존경스러웠다.

나는 메뚜기로서 비교적 성공하는 편이다.
메뚜기란 것이 원래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자리를 빌려 쓰는 것인데
경험에 의하면, 한번 자리를 비운 사람은 오랜 시간동안 자리를 비울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잠시 화장실 간 사람정도가 아닌 바에는 (이런 사람은 책상 위에 그렇게 씌여있다)
그사람이 자리를 비운 이유는, 밥먹으러 나가서 영영히 놀고 있는 것이거나
친구가 애써 맡아준 자리 와서 지키지 못하고 여태 학교 안온 경우거나 뭐 그렇다.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는 (그러나 메뚜기 추방을 위해서 책을 펼쳐 연필 하나 쯤을 올려놓는 불친절은 잊지 않는) 책상에 자리를 잡으면
성공할 확률이 높다.
뒤늦게 나타나는 주인은 가방을 곧 싸서 집으로 가버리기 일쑤다.
여태껏 그들에게 자리를 비우게 만드는 이유,
그 이유에 붙잡혀 올라오지 못한 그들,
그런 그들은 다시 그 이유로 회귀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어제 내 주인도 오자마자 가방 싸고 집으로 갔다.
웃긴 건 아까 연주가 자릴 하나 맡아줬는데 잠시 비운 사이 내 자리에 어제 그 여자가 앉아있는 것이었다.
어제와는 정반대의 상황이었으나, 난 어제 그 여자가 해준대로
가방을 챙겨 집으로 가 줄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었음을 미안해 하다.


내일 시험인데,
내일 시험은 좀 잘봤음 좋겠다.
저 밑에 뭔가 사진을 붙이려 했으나 실패한 흔적이다.
그날 병규랑 성호랑 연주랑 만나 (넷이 만나니 정말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오랜만에 같이 밥을 먹고 찍은 사진을 올리고 싶었는데 알고보니,
이거 링크를 걸든 뭐든 interactive한 게시판을 만들려면 돈을 내야 하는것이었다.
내가 뭘 몰라서 못하는게 아니라 아예 이것밖에 못하도록 철저하게 차단해놓았으니,
난 이런 특징이 맘에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진 한 장 정도는 올릴 틈을 줘야하는것 아닌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남들의 삶이, 생각이 나랑 같은지 다른지 확인하고 싶은 욕구.
오늘 느즈막히 (정말이지 목요일쯤 오니 힘이 달린다. 힘도 없고 오늘은 너무 작은 목소리로 말해 상미가 뭐? 뭐? 뭐? 뭐라고? 이렇게 네 번이나 물어야 했다) 학교에 가는길에
의도하지 않게 두 여대생의 얘기를 엿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싸이얘기였다.




아... 지겹다.... 싸이...




언제쯤 우리의 대화에서 이 지루하고 식상한 주제인 싸이가 사라질 날이 올 것인가.
그만, 나는, 사실은 이 문명으로부터 도태된 나는 이런 식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합리화 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지루하다, 싸이...




나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대에 그들을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시키신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찬성한다.
마냥 이 많은 인간이 에덴에서 영영히 살수 있게 되었다면 우리 모두 다들 뚱뚱보가 되었을 것이다.
밖에서 음식을 돈을 지불하고 사먹을 수 밖에 없는것은 인간 종족의 안정적인 번식을 위한
필요 장치일것이다.







Monday, April 19, 2004

저녁먹고 이정도 놀았으면 됐다 이젠 공부하러 가야지~
내일은 계량경제학 시험본다.
유병삼 교수님은 모집단과 표본 설명할때 하늘 나라 땅나라 (그런데 난 이걸 들으면 왜 별사탕 생각나지? -_-) 예까지 들어주시는
고맙고 자상하며 매우 멋있으신 노교수님이시나
내일 계량을 앞두고 난 좌절하다 T.T

Thursday, April 15, 2004

도서관에서


도서관에서 병훈오빠는 참 자주 만나고 가끔 종우오빠도 만나는데
오늘은 둘을 한꺼번에 만났다.
병훈오빠는 세상에서 젤 착한 사람 중에 한 명이고
종우오빠는 세상에서 젤 웃긴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종우오빠가 '오늘은 왜 그 잘 보이는 자리에 안 앉았냐'며 시작한다.
나도 몰랐는데, 내가 자주 앉는 자리가 중도에 들어서면 누구나가 다 볼 수 있는 젤 잘보이는 자리란다.
게다가 현란한 가방을 들고 와서 딱 가운데에 앉아있는다면서 막 뭐라했다.


내일은 삼천원을 받고 자리를 맡아준댔다.
자기 책상위에 책상 하나를 더 얹어서
중도에서 모든 사람이 볼수 있도록 젤 잘보이는 자리를 만들어 준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웃겼다. 집에 오는 길에 웃느라 걸을 수가 없다.
점심



오늘 실이랑 진하, 연주랑 같이 상대 앞뜰에서 점심 먹었다.
난 참치김밥, 실이는 나중에 아저씨랑 같이 먹겠다고 소보루, 연주는 단팥빵과 고구마 과자 (2000원의 고가였다) 그리고 진하는
블랙데이 기념 짜장 사발면

따뜻하였고 즐거웠다
잠들기 전에 잠시 하게된 생각이
세상에 이렇게 네 사람만 남아서 살게되면 참 좋을것 같다는 생각.
하나님은 왜 대를 거듭할수록 형질이 달라질 수 있게 생명을 창조하셨을까
그래서 세상은 다양할수 있지만 머리가 너무 아푸기도하다.


어쨌든 한시간의 점심시간에 세상에는 이렇게 넷이 있었고
즐거웠더라!


(절대, 진하랑 실이한테 오늘 이곳 주소를 알려주어서 칭찬하는 것은 아님. 진심이다. ^^)
카운테스마라 지갑


오랜만의 아빠 출장.
나는 아빠한테 지갑 하나만 사다 달라고 부탁 했다.
다른 건 살거 없고 제발 다 떨어져가는.. 이 아니라 이미 뜯어지고 얼룩진 지갑을 대체할 놈으로 하나만 사다달라고.

사실 부탁하면서 우리 아빠를 믿을 수 있을 까 좀 불안하긴 했는데
그냥 검은색으로 작은 것 하나 사다달라 부탁했다.



오늘 아빠가 돌아오셨는데
아빠가 자랑스럽게 카운테스마라 것으로 사왔다고 했다.
엥?


아저씨들 벨트밖에 생각 안난다. 왠 카운테스마라야!
나의 주문대로 작긴 하나 회색이고 현란하게 글씨도 많다. -_-



" 지갑 딴데서 보니까 이십만원이 넘어. 도저히 학생 신분으로 용납이 안돼. 상미도 보더니 good이라고 했어"
" 응.... 고마워................................."







지갑을 보고 처음으로 든 생각은
어떻게 하면 아빠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이것을
누군가에게 양도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상미의 표정도 보아하니, 아빠의 기분을 고려해 한 반응이었다, good이라는 것은.

하지만 상미 말에 의하면 아빠는 오늘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선물 많이 사왔어? 그랬더니
이것저것 먹을 것만 잔뜩 사왔다고 한다.
아마 선물을 사고 주는 것의 즐거움으로 인한 기분좋음이었으리라, 생각하고
나는 지갑을 받아들인다.


사실 내가 살 돈도 없고 지갑을 볼때마다 아빠 생각해야지.









edible letters

어젯밤에 상미의 필통에 침투해 복수했다.
내 홍매색 하이테크를 보더니, 어 이거 이쁘네 하면서 가져가 이틀째 자기 필통안에 넣어두었겠다!
덕분에 나는 어제 학교에서 그래프 그리는데 아주 혼이 났다.
경제학 공부하는 사람들 다 알 것이다. 나는 삼색의 색연필과 검은색, 홍매색 두 자루의 하이테크가 없으면
진정 그래프를 그릴 수가 없다. 이렇게 복잡한 것을 검정색 하이테크에게만 그려달라 하는 것은, 정말 안되는 일인데
상미땜에 난 어제 시꺼먼 그래프를 하루 종일 그려야 했다.


상미 필통을 보니 하늘색 하이테크가 두 자루 있었다.
한자루 몰래 훔쳐서 오늘 학교 가져갔다.
그래프 그리는 게 두 배는 수월하겠군 하는 생각으로 즐거워 하면서.


그러다가 하늘색 펜을 꺼내 실로 글자를 쓰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 글씨들 왜 이렇게 색깔이 이상하지?


그동안 분홍색 글씨에만 익숙해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특히 여자들은. 필통안에 있는 펜이 무엇이냐에 따라 노트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색이 결정되어 버린다.
난 홍매색 하이테크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때문에)

하늘색 글씨를 보고,
이거 꼭 언젠가 티비에서 본 보라색 브로콜리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어디 먹겠어? 이런 느낌말이다.

애들한테 야채를 먹이겠다고 특이한 색의 야채를 개발했단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나온 게 보라색 브로콜리.



그때의 느낌이었다.
색깔이 너무 이상해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본것처럼 하늘색 글자들이 낯설다.


난 그동안 분홍색 글자를 쓰고 거기에 익숙해 지면서
그것이 edible하다고 생각해왔나보다
신기하다 나의 마음을 읽은 걸까?
오늘도 외대역에 내려 (오늘은 과일장수 이모한테 아는 척을 할 지 말지 고민할 겨를도 없이 앞을 보고 걷는데)
선미야, 하고 부르신다.

진짜 깜짝놀랐다.
몇년간 침묵했던 이모가 입을 열다니!
여태껏 내가 지나 가는 것을 다 보고 계셨던 걸까

Tuesday, April 13, 2004

도서관에 오랜만에 앉아서 슬쩍 슬쩍 벽에 붙은 시계를 볼 때마다 삼십분씩이 지나 있다.
상대적으로 빨리 가는 시간 체계에 슬쩍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시간은 빨리 가버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현대 백화점 길도 다 문을 닫고 유정이가 먹고 싶어했던 소프트 아이스크림 가게도 close를 달아놓다.
불꺼진 긴 상가의 복도를 지나 지하철을 타고 동네에 도착한 시각은 밤 열두시가 거의 다 되어서였다.

아직도 역 주변에 환하게 불을 켜고 과일을 파는 사람들, 반찬 가게도 있고 길거리 포장마차도 있다.
그 중에 바로 한 분은 엄마의 초등학교 동창이다.

아주 옛날에 엄마가 서울 올라왔을 때
어찌 어찌 하다보니 고향 동창이 한 명 있더라는 것이다.
참 신기하지, 초등학교 동창이랑 같은 동네에서 살게 된것인데
그것은 지금까지도여서 그 엄마 친구분, 윤복이 아줌마는 아직도 과일 가게를 지키고 있다.



시간이 지나서 나도 그 역을 변함없이 오르내리는데
어떨 때는 아줌마가, 어떨 때는 아저씨가, 또 아주 아주 가끔은 그 큰 딸들이 가게를 지킨다.
한참동안은 아줌마 눈이 빨개져 있었는데 아줌마가 백내장인가 무슨 눈병때문에 고생을 했다 했다.



그래도 예쁜 아줌마였는데 시집오고 남편을 잘못만나 고생을 한다는
엄마의 말을 들은지는 오래다.


언젠가부턴가 아줌마도 안경을 쓰고 머리도 조금씩 하얘지는데
매일매일 전철역을 오르내리면서 보는 얼굴이지만
그 십 몇년을 종합해보면 아줌마는 자신의 노화를 동네 사람들에게 공개한 셈이다.
어떻게 아줌마가 나이를 들어가는지 나는 여실히 기억한다.




한참동안 집을 비운 후 요새 다시 학교에 다니느라
역을 오르내리는데
난 항상 습관처럼 그 과일가게를 바라본다.
오늘은 아줌마가 있는지 아저씨가 있는지. 그치만 옛날부터 인사는 잘 하지 않게 된다.
가끔씩 그쪽이 너무 바빠보이기도 하고
또 아줌마로서도, 이제 다 큰 친구의 딸에게 변함없이 과일 가게를 지키는 모습으로 인사를 받는 것이
그리 편안한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며칠 집에 늦게들어가 거리도 한산하고 아줌마도 바쁘지 않아보여
몇번 인사를 했는데
그때마다 내 목소리가 작았는지
아줌마가 먼산을 보고 딴 생각을 하는건지
아님 한 일년 못 본사이 날 기억 못하는건지
번번히 내 인사는 아줌마께 전달되지 못해
난 이제 그냥 지나가야겠다하고 마음을 굳히며
집으로 들어섰다.

Monday, April 12, 2004

reopen

renovation? 은 아닌것 같다.
컴퓨터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없기에
다른 사람들은 링크도 걸고 이것저것 하면서 유용하게 쓰고 있는 것 같은 이 블로그란 것을,
난 그냥 글씨체가 맘에 들고 아직 text만 간단히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선택했다.

다시는 이런거 안할줄 알았는데 그냥 손가락이 근질근질 하다.
그리고 종이에 쓰려고 맘먹었던 일기는 진행에 어려움을 겪어 역시 이제 나도 키보드에 익숙해져 버렸나보다.
No guts, go glory
가끔씩 아예 사회활동이 아예 원천봉쇄되어있는
중세사회쯤으로의 회귀를 바라는 나다. 가끔 그랬으면 좋겠다. 그냥 농사짓고 차 끓이고 살게.
id 변천사

antonia7 _ 옛날에 유니텔 하던 시절이다. 고삼을 졸업하고 통신의 세계에 막 빠져 들던 그때 Pat Matheney의 Antonia를 듣고 따서 지은 아이디다, 별 생각 없이. 그 당시 각종의 내가 좋아하던 뮤지션들이 Pat 을 칭찬하고 나섰기에 그의 앨범을 하나 샀으나
처음에 무척 실망했던 기억이다. 하지만 듣고 듣다보니 어느새 내 고삼길 귀가 길을 지켜주는 친구가 되었죠. 하지만 사실 Antonia보다 다른 곡들이 더 좋았다. 유니텔 재즈동에서도 잠시 기웃거리며 {안톤} 이란 이름을 썼었는데 그 때 누군가가 안톤 체홉이냐고 물어서,
안톤 체홉이 누군지도 모르던 나는 굉장히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유니텔은 없어졌다.


stylishgirl
몇 군데의 아이디였지만, 절대 내가 stylishgirl이기 때문이 아니라,
언젠가 (이것은 내가 인터넷의 세계에 빠지도록 만든 장본인인, 연진이네 집에 한번 놀러 갔을때 얘가 들려준, 어느 그룹의
a very stylish girl이라는 노래때문에 즉흥적으로 갖다 붙인 아이디다.
지금도 몇 군데에 쓰고 있는데 노래는 좋았지만 언제나 날 민망케하기도 한다.

gongfuin8
지금 대부분에서의 내 아이디는 gongfuin8이다.
이상은에 한참 버닝되었던 한때 왕창 만든 daum이며 등등의 아이디.
얼마전에 영지 오빠가 심지어는 학교의 자유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내 짧은 글
TIME정기구독 절대 하지마세요, 류의 글을 내 아이디로 판별해 내었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두루두루 같은 아이디를 쓰는 일의 폐해를 절감했지만
(인터넷의 최대 강점, 익명성을 이용하지 못한다는ㅋㅋ)
더 이상의 아이디를 발견해낼 정도로 의욕적이거나 부지런하지 못하고
또 기억할정도로 머리가 좋지도 않다.


pumpkintato

이건 바로 아래의 웹사이트를 보고알게된 www.blogger.com에서
내 블로그란걸 만들면서 생각해낸 것이다.
엄마가 항상
호박전과 감자를 좋아하는 나한테
'꼭 지 닮은것 만 좋아한다'고 했던 얘기에서 감흥을 얻었다.

http://www.janeandrichard.co.uk/

just cool site. check it out, esp. if you're interested in travel, photo, and stuff.

Friday, April 09, 2004

고삼에서 대학생이 되는 일은 나에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모든 일은 순조로왔다.
좀 재수없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특별히 힘든 것은, 잠을 맘껏 잘 수 없다는 것과
고삼이라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스트레스 쯤.
별보기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과 하루종일 공부를 해야한다는 것 쯤.

과정이 힘들긴 했지만 정해진 길이 있었고 i didn't have to worry about what to do.
didn't worry about my grade that much either. i did well.
grade went up as time goes by and i got an ok-mark at my SAT like test.
anyway, i came to yonsei, that was important

now, i don't know what to do not sure if i'm doing a right thing wo paranoid... so worried ... so exhausted.
사춘기